가죽버선

사전위치

한국의식주생활사전 > 의생활

집필자 고부자(高富子)
갱신일 2018-10-11

정의

제주도 지역 목자牧者들이 방목放牧한 목축을 돌볼 때 신었던 목이 긴 버선 꼴의 가죽신.

역사

역사 수렵 생활을 했던 고대古代 사람들에게 가죽은 옷으로, 살은 먹을거리로 삼는 ‘피의육식皮衣肉食’은 지역에 관계없이 공통 사항이다. 『신당서新唐書』에도 “탐라인儋羅, 耽羅人은 의견시피衣犬豕皮한다.”라고 하였는데, 옷을 개나 돼지가죽으로 했다는 것이다. 이는 제주 사람들이 가죽옷을 입은 역사가 오래되었다는 증거이다.제주에서 피혁皮革 제품이 많이 쓰였던 것은 목초지대로 알맞은 한라산의 자연환경과 더불어 목축牧畜정책과 관련이 깊다. 1273년(원종 14)에 원元나라가 제주를 점거한 후 목마장牧馬場을 설치하고 몽골말[蒙古馬]을 들여와 다루가치[達魯花赤]에게 관할하게 하면서 더욱 발달하였다. 제주에서 동물의 가죽이나 털을 이용한 의관류衣冠類 및 생활용구를 만들어 쓰기 시작한 것은 목자들에게 산이나 들의 생활에 필요한 생필품, 특히 추운 겨울 방한모자나 신 등 피복被服이 필요했고, 아울러 그 재료들을 쉽게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멜표류기』(1668)에 당시 제주 목사牧使 이원진李元鎭이 “표류인漂流人들에게 신 두 켤레와 두툼한 겉옷 한 벌, 가죽보선 한 켤레씩을 주었다.”라는 기록을 통해 조선시대에도 이용되었음이 입증된다.
피혁 제품 중에서도 만들기 쉬운 것들은 자급자족하였으나, 특수 기술이 필요한 ‘가죽보선’이나 ‘가죽신’ 등은 주로 전문 기술자들에 의해 완성되었다.

내용

‘가죽버선’이라 함은 ‘재료가 가죽[皮]이고, 생김새가 버선과 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일반용 다른 신류(화靴·혜鞋·리履)의 틀(구조構造)은 발목·발등·바닥의 세 부분으로 나뉘는 것이 기본이다. 그러나 가죽버선은 옷감으로 만든 버선처럼 바닥 부분이 따로 없고, 좌우左右 두 조각을 맞대어 꿰맨 것이 특징이다.
재료와 길이는 남아 있는 유물遺物을 보면 조금씩 다르다. 주재료는 가죽인데 대부분 구하기 쉬운 개가죽이다. 가장 좋은 것은 노루 가죽이고, 다음으로 어린 말, 즉 망아지 가죽인데 부드럽고 윤이 나서 곱다. 재료를가죽으로만 한 것과, 가죽과 옷감(목면木棉)을 혼용하되 발목 아래는 가죽인데 위는 면棉을 댄 것도 있다. 길이는 버선처럼 발목 위까지 올라온 긴 것(장화長靴)과, 조금 짧은 것(단화短靴)이 있다.
가죽버선을 만들려면 가죽다루기가 가장 중요하다. 가죽에 소금을 치고 부드럽게 펴 가며 손을 본 다음, 가죽 위에 버선본을 떠서 송곳으로 촘촘하게 구멍을 뚫는다. 바느질은 버선본대로 마름질한 좌우 양쪽을 맞춘 다음 가늘고 길게 오린 가죽·칡·마麻·면으로 마련된 끈으로 겉에서 바늘로 꿰맸다. 발목에는 긴 ‘가죽 끈’을 달았다. 이 끈은 신바닥이 판판하지 않은데다가 목이 버선처럼 길고, 또 뒤축이나 바닥에 따로 버팀목이 없는 가죽버선이 험한 곳을 걷다 보면 벗겨지기 쉽기 때문에 단단하게 고정시키기 위한 장치이다.
전통시대에는 짚신처럼 가죽을 가늘게 오려 만든 ‘감실신’을 신었고, 후에는 자동차 타이어 낡은 것이나, 폐廢처리 된 고무로 만든 짚신 꼴의 ‘국시신’을 만들어 쓰기도 했다. 한편 바닥이 판판하지 않기 때문에 눈 쌓인 곳에 갈 때는 더 안전하고 편한 ‘태왈(설피)’을 덧신었다. 발에 신을 때는 먼저 기름을 고르게 바르는데 이는 가죽이기 때문에 쓰지 않고 두면 굳어서 뻣뻣해지므로 부드럽게 하기 위한 것이며, 주로 ‘돼지기름’을 썼다. 신지 않을 때는 ‘좀’이 쓸지 않도록 아궁이 벽에 매달아 두고 연기를 쏘였다.

특징 및 의의

겨울철 제주 목자들은 외출할 때 가죽버선과 더불어 머리에 ‘가죽감티’(목덜미를 가리는 털모자)를 쓰고, 몸에 ‘가죽두루마기’를 입고, 종아리에 ‘가죽발레’를 찼다. 짐승의 가죽이나 모피를 이용한 방한용 피복류는 제주에서 많이 입었으며, 남아있는 유물도 다른 지역에 비해 많은 편이다. 특히 털모자나 가죽옷의 모피 처리가 북방北方의 만주나 몽골 것은 털이 안으로 사용된 것이 보통이지만, 제주 것은 밖으로 노출되어 있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참고문헌

제주도 복식의 민속학적 연구(고부자, 이화여자대학교 석사학위논문, 1971), 제주도 의생활의 민속학적 연구(고부자, 서울여자대학교 박사학위논문, 1994), 한국민속종합조사보고서17-의생활(문화공보부 문화재관리국, 1986).
필자 고부자(高富子)

가죽버선

가죽버선
사전위치

한국의식주생활사전 > 의생활

집필자 고부자(高富子)
갱신일 2018-10-11

정의

제주도 지역 목자牧者들이 방목放牧한 목축을 돌볼 때 신었던 목이 긴 버선 꼴의 가죽신.

역사

역사 수렵 생활을 했던 고대古代 사람들에게 가죽은 옷으로, 살은 먹을거리로 삼는 ‘피의육식皮衣肉食’은 지역에 관계없이 공통 사항이다. 『신당서新唐書』에도 “탐라인儋羅, 耽羅人은 의견시피衣犬豕皮한다.”라고 하였는데, 옷을 개나 돼지가죽으로 했다는 것이다. 이는 제주 사람들이 가죽옷을 입은 역사가 오래되었다는 증거이다.제주에서 피혁皮革 제품이 많이 쓰였던 것은 목초지대로 알맞은 한라산의 자연환경과 더불어 목축牧畜정책과 관련이 깊다. 1273년(원종 14)에 원元나라가 제주를 점거한 후 목마장牧馬場을 설치하고 몽골말[蒙古馬]을 들여와 다루가치[達魯花赤]에게 관할하게 하면서 더욱 발달하였다. 제주에서 동물의 가죽이나 털을 이용한 의관류衣冠類 및 생활용구를 만들어 쓰기 시작한 것은 목자들에게 산이나 들의 생활에 필요한 생필품, 특히 추운 겨울 방한모자나 신 등 피복被服이 필요했고, 아울러 그 재료들을 쉽게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멜표류기』(1668)에 당시 제주 목사牧使 이원진李元鎭이 “표류인漂流人들에게 신 두 켤레와 두툼한 겉옷 한 벌, 가죽보선 한 켤레씩을 주었다.”라는 기록을 통해 조선시대에도 이용되었음이 입증된다. 피혁 제품 중에서도 만들기 쉬운 것들은 자급자족하였으나, 특수 기술이 필요한 ‘가죽보선’이나 ‘가죽신’ 등은 주로 전문 기술자들에 의해 완성되었다.

내용

‘가죽버선’이라 함은 ‘재료가 가죽[皮]이고, 생김새가 버선과 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일반용 다른 신류(화靴·혜鞋·리履)의 틀(구조構造)은 발목·발등·바닥의 세 부분으로 나뉘는 것이 기본이다. 그러나 가죽버선은 옷감으로 만든 버선처럼 바닥 부분이 따로 없고, 좌우左右 두 조각을 맞대어 꿰맨 것이 특징이다. 재료와 길이는 남아 있는 유물遺物을 보면 조금씩 다르다. 주재료는 가죽인데 대부분 구하기 쉬운 개가죽이다. 가장 좋은 것은 노루 가죽이고, 다음으로 어린 말, 즉 망아지 가죽인데 부드럽고 윤이 나서 곱다. 재료를가죽으로만 한 것과, 가죽과 옷감(목면木棉)을 혼용하되 발목 아래는 가죽인데 위는 면棉을 댄 것도 있다. 길이는 버선처럼 발목 위까지 올라온 긴 것(장화長靴)과, 조금 짧은 것(단화短靴)이 있다. 가죽버선을 만들려면 가죽다루기가 가장 중요하다. 가죽에 소금을 치고 부드럽게 펴 가며 손을 본 다음, 가죽 위에 버선본을 떠서 송곳으로 촘촘하게 구멍을 뚫는다. 바느질은 버선본대로 마름질한 좌우 양쪽을 맞춘 다음 가늘고 길게 오린 가죽·칡·마麻·면으로 마련된 끈으로 겉에서 바늘로 꿰맸다. 발목에는 긴 ‘가죽 끈’을 달았다. 이 끈은 신바닥이 판판하지 않은데다가 목이 버선처럼 길고, 또 뒤축이나 바닥에 따로 버팀목이 없는 가죽버선이 험한 곳을 걷다 보면 벗겨지기 쉽기 때문에 단단하게 고정시키기 위한 장치이다. 전통시대에는 짚신처럼 가죽을 가늘게 오려 만든 ‘감실신’을 신었고, 후에는 자동차 타이어 낡은 것이나, 폐廢처리 된 고무로 만든 짚신 꼴의 ‘국시신’을 만들어 쓰기도 했다. 한편 바닥이 판판하지 않기 때문에 눈 쌓인 곳에 갈 때는 더 안전하고 편한 ‘태왈(설피)’을 덧신었다. 발에 신을 때는 먼저 기름을 고르게 바르는데 이는 가죽이기 때문에 쓰지 않고 두면 굳어서 뻣뻣해지므로 부드럽게 하기 위한 것이며, 주로 ‘돼지기름’을 썼다. 신지 않을 때는 ‘좀’이 쓸지 않도록 아궁이 벽에 매달아 두고 연기를 쏘였다.

특징 및 의의

겨울철 제주 목자들은 외출할 때 가죽버선과 더불어 머리에 ‘가죽감티’(목덜미를 가리는 털모자)를 쓰고, 몸에 ‘가죽두루마기’를 입고, 종아리에 ‘가죽발레’를 찼다. 짐승의 가죽이나 모피를 이용한 방한용 피복류는 제주에서 많이 입었으며, 남아있는 유물도 다른 지역에 비해 많은 편이다. 특히 털모자나 가죽옷의 모피 처리가 북방北方의 만주나 몽골 것은 털이 안으로 사용된 것이 보통이지만, 제주 것은 밖으로 노출되어 있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참고문헌

제주도 복식의 민속학적 연구(고부자, 이화여자대학교 석사학위논문, 1971), 제주도 의생활의 민속학적 연구(고부자, 서울여자대학교 박사학위논문, 1994), 한국민속종합조사보고서17-의생활(문화공보부 문화재관리국, 1986).필자 고부자(高富子)